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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4-04 19:12
바른 선택의 능력
 글쓴이 : 관리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한 선물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망설일 때도 많지만, 그러나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인간은 인간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능력을 상실해 버린다면 우리는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 선택의 능력이 얼마나 본질적인 것인지 극적으로 체험했던 사람이 바로 빅터 프랭클이라는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나찌 치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의 포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닐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소지품은 물론이고, 이빨사이에 있는 금마저 뽑아갔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나 학식, 명성 같은 것도 그곳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름도 박탈당하고 단순히 숫자로 불리었습니다.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처럼 철저하게 인간성이 유린당하는 상황에서 심리학자였던 빅터프랭클은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틈틈이 메모해 나가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었고, 그 선택 여하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죽음의 포로수용소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죽음밖에 무엇이 있겠느냐고 생각하고, 환경에 짓눌려 산 사람들은, 결국 아무리 건장한 사람도 얼마 못가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아서 나찌의 만행과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결심을 한 사람들은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이러한 그의 경험을 석방 후 한권의 책으로 써냈는데 "죽음의 포로수용소에서"라는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약 그곳에 있었다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죽음 앞에 섰을 때 나찌를 저주하고 죽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용서하고 죽을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웃을 것인지, 아니면 침울하게 짓눌려 살 것인지도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그런 와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서라도 자신들은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유머가 풍부했던 때가 바로 죽음의 포로수용소 시절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했을 때 실패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을 유머로 대처하는 여유를 갖기보다 아무런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물려받은 잘못된 죄성이요,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으려는 잘못된 속성입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 내가 내린 크고 작은 모든 선택의 결과이고 내일의 나는 오늘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있어서 바른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매일의 삶 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먼저는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창세기 13장에 나오는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의 선택과 삶에서 우리는 큰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롯은 자신의 욕망을 좇아 선택하지만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바라보라 하신 것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또 롯은 자신의 욕망에 끌리는 대로 행하지만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동서로 행해보라고 하신 대로 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으로 중요한 영적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야망과 비전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점입니다. 야망은 자신이 품은 자신의 욕망에 근거한 꿈이라고 한다면, 비전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그분과 함께 보는 것이며 그 비전과 자신의 삶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롯은 야망을 품었지만 아브람은 비전을 품었습니다. 롯은 야망의 길을 따라갔지만, 아브람은 비전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한 사람은 육적인 것에 가치관을 두고 살았지만, 아브라함은 영적인 것을 중히 여기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삶을 완전히 다르게 결정짓는 운명의 선택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생각과 의식의 문제입니다. 똑 같은 일을 당해도, 똑 같은 것을 보아도 생각과 의식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그릇된 선택을, 다른 사람은 바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느 경건한 사람이 쓴 글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 이 분은 실패에 대해 우리와 어떻게 생각을 달리하고 있는지 비교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 주님, 제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실패란 내가 실패자란 뜻이 아니라 내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내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무엇인가를 배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내가 바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감히 시도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내가 가지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다른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내가 열등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뜻이기 대문입니다. 실패는 내가 내 시간을 허비했다는 뜻이 아니라 내게는 다시 시작할 구실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내가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내가 결코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뜻이 아니라 내게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당신이 나를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에게 더 좋은 생각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병영교회님에 의해 2009-09-03 20:56:00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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